Esoteric - X-01 D2
충실한 재생력과 믿음직한 만듦새
SACD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차세대 기기로의 투자를 저해하는 요소라고해도 X-01 D2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밀도감과 직진성에서 일 만 달러 내외의 CD 플레이어들에 뒤지지 않은 성능을 보여준다. 이쯤 되면 SACD에 대한 기대감이 잔뜩 생기게 된다. 김성건 | 오디오 평론가
조카의 졸업식이 있다고 한다. 무척 바쁜 월요일이었으나 잠시 생각에 잠긴 뒤 참석하기로 했다. 겨울은 이미 지나간 듯 봄볕이 따가왔다. 20년 전에 이 캠퍼스에서 졸업식을 가졌었다. 많이 달라져 있었다. 새로 지어진 건물들 사이로 힘겹게 조카가 졸업하는 단과대학을 찾아갔다. 지금은 전 졸업생이 모여서 행사를 가지는 것이 아니었다. 작은 단과대 강당 안에서 선생님들과 학생들과 졸업생 가족들이 모여서 각기 학위수여식을 하고 있었다. 한구석에 현악 4중주팀이 엘가와 하이든과 모차르트를 연주하고 있었다. 될 수 있으면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조심 풀어가는 연주가 새로웠다. 북적거리는 실내는 무더워서 아무도 음악에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하지만 그들이 있어서 학사모를 쓰고 사회로 뛰쳐나가는 친구들이 조금 덜 가련해 보였다.
자랑스런 후배들아. 이제 너희들은 알게 될 것이다. 세상이 너희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 사실에 뼈저린 자괴감을 느끼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을 느끼겠지. 하지만 잊지 말아라. 오늘 너희들이 듣는 둥 마는 둥 지나친 엘가와 모차르트와 하이든이, 그 밖의 위대한 예술가들이 너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조카를 위해서 모차르트 전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디지털 오디오에 대한 업계의 노력은 눈물겹다. 디지털은 아날로그에 비해서 뭔가 부족하다는 선입견 속에서, 새로운 제품이 나올 때마다 최고의 찬사라는 것이 '매우 아날로그에 근접한 사운드' 라는 다소 섭섭한 멘트에 그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발표된 일 만 달러 이상의 하이엔드 제품들은 LP의 사운드와 흡사한 성향을 보이고 있다. 소리의 성향은 그렇다 치고 고가의 신제품을 접할 때마다 새로이 들려오는 익숙한 소스를 바라보는 시각은 좀 복잡하다. 아직 긁어내어 보지 못한 데이터가 소장 타이틀에 그득 그득 담겨 있다는 점에 좋아해야 하는 것인지, 또는 그 데이터를 들어보기 위해서 엄청난 투자를 감행해야 하는 것에 난감해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가운데 신기술의 디지털 오디오는 감추어져 있던 소리의 신호를 찾아내어 애호가에게 들려주며 유혹을 멈추지 않는다.

세간의 찬사를 한몸에 받았던
에소테릭의 'X-01 Limited'는 X-01 D2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한다. 그 이야기를 한번 해 보도록 한다.
X-01은 이미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국내 오디오 애호가들의 찬사를 받은 바 있다. 에소테릭의 주장에 따르면
X-01 D2의 성능은 리미티드 에디션을 가볍게 넘어선다고 한다. 가격도 만만치 않다. 이 정도의 논평은 마치 X-01 D2의 음악세계가 매우 아날로그에 유사하다는 뜻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에소테릭의 음장 철학은
디지털의 극한을 개척하려는 의지가 뚜렷이 보인다. 그리고 나는 이 기기를 통해서 아날로그를 흉내 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에 동의하게 되었다. 물론 에소테릭이 진짜 그런 생각으로 이 물건을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전면은 여타의 하이엔드 시리즈와 같은 디자인 맥락으로 유지되지만 버튼과
디스플레이를 최대한 단순화하여 고급기의 이미지를 표현한다. 그리고
무척이나 무겁다. 시그널의 인터페이스에서는 특이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I
EEE1394를 지원한다. 프론트 스테레오 채널을 XLR과 RCA로 지원하고 센터, 서라운드, 서브우퍼 아웃은 RCA만 지원한다. 아쉬운 일이지만 시청은 2채널 스테레오에 국한하고 밸런스 연결을 기본으로 했다. 3점 지지의 베이스는 고정밀 베어링 가공되어 있다. X-01 D2에서 가장 인상 깊은 점은 레드북 CD의 충실한 재생에 있다. 이 점은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X-01과 가장 다른 요소인데, 기존의 멀티비트에 더불어 비트스트림을
아날로그 디바이스의 AD1955를 사용해서 DSD로 컨버팅한다는 점이다. PCM을 DSD로 컨버팅하는 것은 여타 여러 가지 기기에서 시도된 일이지만 X-01 D2는 그 과정을 매우 자연스러우면서도 뚜렷하게 튜닝하여 마치 DSD를 듣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SACD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차세대 기기로의 투자를 저해하는 요소라고 해도 X-01 D2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밀도감과 직진성에서 일 만 달러 내외의 CD 플레이어들에 뒤지지 않는 성능을 보여준다. 이쯤 되면 SACD에 대한 기대감이 잔뜩 생기게 된다. 최근 미주지역에서 개발된 SACD 플레이어의 유연하고 탄력 있는 사운드는 아날로그를 방불케 하는 소리였다. 여러가지 SACD들을 차례로 듣기 시작햇다. 일단 캐롤 킹의 '태피스트리'제니퍼 원즈의 'The Well'은 SACD와 LP로 모두 가지고 있는 타이틀이다. 분명히 X-01 D2의 음장철학은 디지털 매체를 통한 아날로그의 재연은 아니다. 그보다는 더욱 밀도 있는 디지털 음향에 대한 완성도의 향상이 확실하다.
기존의 아날로그가 가지고 있던
폭넓은 관용도와 치밀한 소릿결에 왕성한 다이내믹을 쏟아 넣어 에너지 넘치는 사운드를 만들어 낸다. 그렇게 해서 종래의 SACD가 종종 보여준 '양 끝이 흐트러지는' 소리가 배제되고 리니어리티가 우수하면서 탄력 있는 텍스처를 유지하는 양질의 소리를 전달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이 강력한 일관성의 표현을 위해서 에소테릭은 고강성의 섀시 속에 진동을 최대한 억제하는
VRDS-Neo매커니즘을 수납한다. 그리고
채널당 버브라운 1704 DAC를 네 개씩 사용하고 이 모든 시스템을 강력한 전원부로 지원하는 물량을 쏟아 부었다.
그로 인해 탁월한
3D가 엄청난 해상력으로 표현된다. 에릭 빕의 기타와 목소리에는 탄탄한 긴장감이 흐른다.
금관악기의 윤기와 광채가 더욱 빛을 발하고 대편성의 교향곡이 시원하게 터져 나오는 음장감은 좀처럼 만나기 힘든 사운드임에는 틀림없다. 아직 아날로그 디스크의 매력과 그 소리의 아름다움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아름다움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아날로그의 특성인 부드러움과 매콤함이 그 모든것인 양 대변되어 모든 음향 철학의 잣대처럼 사용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착각에 의한 오류'임을 나는 지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X-01 D2의 등장은 디지털 오디오의 가야 할 길에 대한 이정표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데이터의 이음새를 줄이면서 동시에 음장과 음색을 만들어 나가는, 그래서 연주자의 입장이 아닌 애호가의 입장에서 만족도를 극대화 할 수 있는 방안을 에소테릭이 제시하는 모습을 그려 보는 것이다. 중급 턴테이블을 구입했다. 보관해 오던 LP들을 하나씩 꺼내어 먼지를 닦고 그 나긋나긋한 사운드의 품에 안겼다. 2~3주 일을 LP만 듣고 있던 것 같다. 역시 디지털은 한계가 있어. LP를 더 사 모아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얼마후 그 새로운 자극에 대한 약효가 떨어질 무렵 타탁거리는 잡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잡음도 음반의 일부라고 자기 최면을 걸어 보지만 점점 더 크게 들리는 잡음이 하스킬의 타건을 자꾸만 방해했다. 그리고 다시 CD를 들었다. 다소 결질이고 다소 좁아진 듯하지만 그래도 편안하다. 기술의 진보를 막기에는 너무 먼 길을 걸어 온 셈이다. 현제의 타협점은 잘 만들어진 SACD 플레이어뿐이다. CD의 재생이 만족스러우면 더욱 좋다. 그래서 X-01 D2의 리뷰를 기분 좋게 마칠 수 있었다. 훌륭한 대비책이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다시 LP의 사운드가 감동을 전해 주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이것인가.
- 월간오디오 2007년 4월호 김성건 리뷰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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