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idian - G06
음악에 귀 기울이게 하는 소리의 미학

CD 플레이어가 대중에게 막 다가오던 시절. 오디오라는 생경한 이름이 전통의 명칭인 전축을 몰아내던 시절이 있었다.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층층이 쌓아놓는 오디오 기기를 TV에 광고했고, 한 시스템에 스피커와 앰프와 튜너와 턴테이블, 카세트 데크와 스펙트럼 이퀄라이저까지 한꺼번에 팔아대던 때가 실제로 있었다는 것이 잘 믿기지 않는다. 그 당시 CD플레이어는 대부분 옵션 사항이었고, 모두 고부가가치의 상품이었다. 그 당시 젊은 필자는 필립스의 레이저 옵틱 시스템을 국내 유수의 오디오 생산자들에게 마케팅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디지털 오디오가 완전히 자리 잡기 전이었고, 업계는 필립스와 소니가 양분해서 점령하고 있었다. 각각은 서로 다른 설계 철학으로 전혀 호환하지 않는 시스템을 공급했다.
그리고 많은 개발자들이 소니를 선호했다. 필립스의 시스템은, 특히 비트스트림은 도무지 흐물흐물해서 칼칼한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필자는 시범 케이스가 필요해서 본사에 지원을 요청하고 본사의 지원군은 세종류의 기기를 들고 나타났다. 필립스의 사촌격인 마란츠의 고급기와 프랑스의 마이크로메가, 그리고 메리디언이었다. 그렇게 해서 당시 오디오의 명가로 자라나던 인켈 사에 디자인을 넣게 되었다. 지금은 필립스의 메커니즘이나 비트스트림이 물컹하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 이후 메리디언은 급격한 진보를 거듭했다. 시스템을 꾸준히 개량하여 하이엔드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고, 급기야 메리디언 비손실 압축기술이라는 고품위 디지털 표준으로 DVD 오디오에 이름을 새긴다. 초기부터 지켜온 소박한 디자인을 과감히 탈피해서 은색의 멋진 플랫폼을 출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G시리즈로 엔트리 레벨을 공격한다. G07과 G08로 호주머니가 가벼운 애호가들을 유혹하더니 급기야 G07의 마이너 체인지로 G06을 발표한다.
얇고 긴 프런트 패널로 인해 G06에서는 전형적인 유럽의 디자인 콘셉트가 느껴진다. 상판은 비구상화를 보는 것처럼 시원스런 격자 가운데 큼직한 흑경이 더욱
고급스러워서 랙에 넣고 쓰기가 아까울 것 같다. 예의 멋진 디자인에 시원한 매트릭스 디스플레이가 마음에 든다. 곡의 인덱스가 표시됨은 물론이고, 푸른 색조가 인테리어에 한 몫할 것 같다. 은색과 검정색의 선택이 가능하며 매력적인 메리디언의 통합 리모컨이 제공된다.

이 멋진 통합 리모컨을 거실의 탁자위에 놓으면 아주 잘 어울린다. 버튼을 건드리면 품위 있는 색색의 버튼이 밝게 피어오른다. 이 리모컨은 학습형이므로 약간의 시간을 투자해서 사용법을 익혀 놓으면 온 집안의 리모컨을 모두 치워 버릴 수 있다. 그런데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다. 필자는 몇몇 셋톱박스를 디지털 TV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데, 이 셋톱박스를 디지털 TV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데, 이 셋톱박스의 리모컨이 G06에 오동작을 발생시킨다. G06을 사용할 때는 반드시 통합 리모컨을 쓸 필요가 있겠다.
멋진 통합 리모컨이지만 버튼에 불이 켜져 있을 때 작은 소음이 생긴다. 깊은 밤 신경이 날카로운 사람에게는 거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세트에서만 생기는 문제일 수도 있지만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밸런스 출력은 제공하지 않는다. 누차 강조하듯 필자가 XLR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 단단한 체결력 때문이다. 그 외에는 그 냥 직관적으로 사용하면 된다. 다른 메리디언 기기를 통합해서 사용하지 않는다면 굳이 메뉴얼을 읽을 필요도 없다.
직관적이고
사용하기 편한 프론트 패널 컨트롤이 완비되어있다. 컴퓨터용 광 드라이브를 사용하고 있다지만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 어쩌면 더욱 공급이 원활한 핵심부품을 확보하는데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동사의 주장은 컴퓨터용 드라이브를 사용함으로써 더 고속의 회전이 보장되고 더욱 뛰어난 에러 정정이 가능하다는 점인데, 확신이 서지 않는 부분이지만 반론할 명확한 증거도 없다.
가지고 있던 CD 플레이어가 원인 모를 오동작을 일으켰다. 음악을 제대로 듣지 못하던 차에 신제품 CD 플레이어를 리뷰하라는 엄명은 도리어 반갑다. 밸런스도 출력이 제공되지 않으므로 RCA로 앰프에 연결했따. 강렬한 임프레션을 불러일으키는 디스플레이. 약간 반응 시간이 느린 듯하더니 음악이 나오기 시작한다. 치밀하고 해상도 높은 소리가 아니다. 하지만 여유있고 풍성한 음악이 가득한 그런 소리가 흘러나온다. 나는 G06에 어떤 디지털 솔루션이 채용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제 CD 플레이어의 성능과 특성이 특정 회사의 기초 기술에 종속하는 시대는 예전에 지났다는 것이다. 오직 음악적 완성도에 의해서 고객의 선택을 받을 뿐이다.
메리디언 G06의 사운드 철학은 전통적 메리디언 사운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적이고 스피커 뒤쪽으로 멀찍이 물러앉아서 여유 있게 신호의 에너지를 공급한다. 이러한 특성은
오래오래 대편성 교향곡을 들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휴일 한낮에 독서에 빠져 들면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듯한 해상도의 음악을 듣고 싶어 할 사람은 없다. 주변에 항상 음악을 있게 만드는 오디오는 따로 있다. 그 중 하나가 G06의 사운드임에 추호의 의심도 없다.

필자는 쇼팽을 좋아하는데 아내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그녀는 피아노를 좋아하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바이올린도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실연은 무척 좋아하니 참 모순된 일이다. 오디오로 재생되기 때문이다. 그녀를 만족시키려면 아마도 지금 가지고 있는 기기들을 사느라고 쓴 돈의 세 배는 더 투자해야 성과가 나올 것 같다. 그런데 메리디언은 다르다. 이 기기가 실제의 악기음과 잔향음을 잘 살려내는 것은 아니지만 듣기 좋고 편안한 소리를 만들어 낸다는 뜻이다. 날카롭게 찔러대는 소리로 자기학대를 감내하면서 하이엔드를 고집하는 이유가 아리송해진다.
참 이상한 일이 생겼다. 마크 레빈슨 390CD 플레이어가 아무 이유도 없이 다시 동작 하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행복했다. G06을 반납하고 며칠이 지난 후라서 반갑게 음반을 골라 듣고 또 들었다. 390으로 쇼팽을 연주하는 순간 아내는 다시금 잔소리를 시작했다.
- 월간 오디오 2006년 10월호글 발췌-
- Meridian G06 바로 가기 -